폴 앤더슨·밀라 요보비치, 스티븐 스필버그·케이트 캡쇼, 제임스 카메론·수지 에이미스 부부. 이들의 공통점은 할리우드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난 부부라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감독·배우 부부를 볼 수 있는데요. 1년간 비밀연애를 한 뒤 ‘연애 발표’가 아닌 ‘결혼 발표’로 주위를 놀라게 했던 국내 명감독·명배우 부부는 누구일까요?
작품 회식 자리에서
시작된 인연
장준환 감독과 배우 문소리의 첫만남은 2003년 영화 <지구를 지켜라> 회식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영화 <지구를 지켜라> 출품으로 장준환 감독은 신인상을 휩쓸었는데요. 문소리 역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작품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그래서 작품 주연이었던 신하균에게 전화로 영화 칭찬을 했죠. 신하균은 마침 전주에서 진행 중이었던 작품 회식 자리에 문소리를 초대합니다.
그렇게 회식 자리에서 첫 만남을 가진 둘. 그때는 둘 다 애인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준환은 술에 취해 기운이 없는 문소리의 손을 테이블 밑으로 잡아줬는데요. 문소리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장준환을 지긋이 쳐다봤습니다. 그때 장준환은 “내 맘을 알아주는구나”하고 느낀 것이죠. 문소리는 그저 같은 영화 동료로서 “힘내”라는 뜻이 담긴 격려로 손을 잡는 줄 알았습니다.
뮤직비디오 섭외로
더 깊어지는 감정
같은 해 장준환 감독은 정재일의 <눈물꽃>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주인공 섭외 과정에서 문소리를 다시 만나고 끌리게 되죠. 장준환은 작업 미팅이 끝난 후 “어떤 남자가 좋냐?”하고 문소리에게 물었습니다. 문소리는 “키 작고, 까맣고, 공무원 스타일”이라며 장준환 스타일과 반대되는 스타일을 대답했죠.
당시 문소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영화를 하는 사람, 특히 감독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었죠. 하지만 장준환의 대시는 연말까지 이어집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사 들고 문소리를 찾아가죠. 문소리는 지인들과 모임 선약이 있었는데도 함께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문소리에게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는 고백 메일을 보내죠. 문소리는 “내가 멀쩡해 보여도 미친 구석이 많다.”라고 답장합니다. 하지만 “나도 미친 사람이라 괜찮다.”라는 장준환의 대답에 문소리는 결국 마음을 열게 됩니다.
1년간 주변을 깜짝 속인
비밀연애 후 결혼 골인
왠지 문소리는 장준환과 금방 헤어질 줄 알았다며 철저히 비밀연애를 유지했습니다. 두 사람의 집 사이에 있는 포장마차와 한강에서만 데이트를 했죠. 연애 중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로 대하는 사이처럼 서로 깍듯하게 존댓말만 사용했습니다.
장준환이 결혼 얘기를 꺼내면 문소리는 “능력 있으면 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장준환은 “네. 그래요. 그러면 또 얘기해요.”하며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결혼이 주저되는 문소리가 “나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해도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돼요.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고 했죠.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서서히 다가가던 게 통했고 결국 문소리는 청혼을 수락합니다.
아직도 존댓말 유지하는
달달한 부부 라이프
비밀연애 때의 습관이 남아 결혼 16년 차인 그들은 아직도 존댓말을 씁니다. 심지어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존댓말을 쓰는데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한 사이의 비법을 물어보니 문소리는 “직업 특성상 멀리 떨어져 있을 시간이 많다. 요새는 주말부부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재회하면 더욱 설레고 애틋한 모습을 보여주죠. 전화 통화에서도 역시 뽀뽀를 날리며 달달함을 풍깁니다.
문소리는 남편도 짠돌이고 본인도 짠돌이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생일 선물로 ‘제주에 집 하나’를 갖고 싶다는 문소리의 말에 장준환은 당근마켓에서 제주도 월세 33짜리 집을 1년 계약합니다. 이 집 덕분에 주말부부였던 둘은 딸 연두와 함께 2달 동안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장준환은 자신의 소원을 공개했습니다. 문소리에게 ‘오빠’소리를 듣는 것이죠. 문소리는 “‘오빠’라고 하면 남자들이 여성을 조금 귀여워하는 것 같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부부관계일수록 더더욱이나 ‘내가 나이가 많지? 넌 어리고 나한테 넌 귀여운 존재지?’ 이럴까 봐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문소리는 이제 오빠 소리를 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고는 “준환 오빠, 늘 다정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좋은 작품 많이 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웬만하면 나 좀 배우로 쓰자.”라고 유쾌하게 말했습니다.